창경궁 조사,연구
- 최초 등록일
- 2009.12.10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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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창경궁을 조사,연구한 자료입니다.
목차를 참고해 주세요. 사진자료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1. 개관
2. 창경궁의 주요 건물들
1) 홍화문(弘化門)
2)옥천교(玉川橋)
3)명정문 및 행각(明政門 및 行閣)
4) 명정전(明政殿)
5)통명전(通明殿)
6) 관천대(觀天臺)
7) 풍기대(風旗臺)
8) 팔각칠층석탑(八角七層石塔)
참고문헌
본문내용
1. 개관
창경궁은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후 경복궁,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건설된 궁궐이다. 창경궁이 세워지기 전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나서 살기 위해 창경궁 터에 수강궁(壽康宮)을 지었다. 수강궁이 세종 즉위년(1418)에 완공되어 태종은 이곳으로 거처를 정하고 살았다.
창경궁이 본격적으로 궁궐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9대 임금인 성종(1469-1494)때였다. 성종은 할머니인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와 생모인 소혜왕후 한씨, 예종비인 안순왕후 한씨 등 세분의 대비를 모실 공간이 필요했는데 가까운 창경궁 터를 주목한 것이다. 창경궁은 성종 15년(1484)에 공사가 끝났는데,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당시 문필가로 이름을 날리던 서거정(徐居正)에 명하여 전당의 이름을 짓게 했다.
대비를 위한 처소로 세워졌지만, 때때로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사(政事)를 이끌어 갔다. 창경궁은 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7년(1615)에 다시 중건되었는데, 중건된지 9년만인 인조 2년(1624) 1월에 부원수 이괄(李适)의 난 때 전당 대부분이 불탔다. 인조는 11년(1633)에 광해군이 인왕산 아래에 지은 인경궁(仁慶宮)을 헐어 그 목재로 창경궁을 복원했다.
그 후 창경궁에는 후대 임금에 의해 새로운 전당이 속속 들어섰다. 특히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惠慶宮) 홍씨가 거처할 집으로 자경전을 지었으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제사를 위해 창경궁 동편에 경모궁(景慕宮)을 건설했다.
참고 자료
이덕수, 2004 『(新)궁궐기행』, 대원사.
이강근, 2003 『창경궁』, 문화재청.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 - 서울』, 돌베개.
한영우, 2006 『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열화당.
한영우, 2003 『창덕궁과 창경궁』, 열화당.
문화재청 홈페이지 http://www.cha.go.kr/
창경궁 홈페이지 http://cgg.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