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 최초 등록일
- 2009.11.04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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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교회사를 통해 한국기독교의 뿌리를 알아보자
목차
한국기독교회사
제1장 한국의 근대 이전의 교회
제2장 : 한국의 protestant church
제3장 : 한국 기독교인의 발생과 집회
제4장 : 한국 프로 테스탄트 형성과 부흥
본문내용
제 1장 한국의 근대 이전의 교회
당나라를 통한 접촉
당시 초대교부는 5대 교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교부들은 각자의 방법대로 신학을 계승해 갔고 그 사이에서는 많은 이단들도 생기게 되었다. 그 사이의 신학적 논쟁이 되는 것들은 공의회를 통해 해결 하였다, 제 3차 공의회는 AD 431년에 에베소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그 주된 내용은 기독론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있었는데 특히 그리스도는 인성과 신성을 함께 공유하지만 점진적 동화과정을 통해 이루어짐과 마리아 호칭의 대한 무죄로 네스토리우스(Netorius)가 정죄 당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네스토리우스는 페르시아 에데사로 망명하게 되고 그 곳에서 작은 신학교를 설립하고 동양 선교의 비전을 가지게 된다. 결국 그들의 제자들은 AD635년에 기독교를 인도와 중국에 전파하게 되는데. 중국에서는 이 기독교를 경교라고 하였다.
네스토리안(-네스토리우스의 제자들nestorian)들은 당시 중국 황제는 당태종, (당태종: 아라곤의 설교 감명, 파사사라는 교회 세워줌.) 왕이 관심을 가지므로 크게 번창하였고 당태종은 이방문화의 우호적 입장을 가진 왕이었다. 그때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삼국통일을 꿈꾸던때) 우리나라는 당나라 힘입어 통일을 이루려 하였다.(신라의 김춘추 여러번 방문) 이런 신라가 당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럼 당시 당태종이 관심을 가지고 번창시킨 종교에 김춘추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교가 분명히 김춘추나 다른 신라인들의 의해 신라에 전해 졌을 것이다. 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이다.
1635 - 중국 서안부(북경)에서 대진 경교 유행 중국비 같은 수도 이 비문에는 중국어와 시리아어로 736자(중국어, 시리아)로 기록되었고 경교가 중국에서 전파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런 대진 경교 유행 중국비의 모조품이 금강산의 절에서 1917년에 발견 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또한 1956년 불국사 경내에서 돌 십자가가 발견되었기도 하다.
참고 자료
한국기독교교회사|민경배|연세대학교 출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