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집강소 인가?
동학 농민군이 봉기기간에 특히 그 집강소 기간에 사회신분제 폐지와 토지개혁의 실시를 추구했으며, 이러한 폐정 개혁 정책은 전근대적 수취 제도에 대한 개혁 정책과 함께 중세적,봉건적 구체제를 폐지하고 근대적 신체제의 수립을 지향한 진보적 성격의 운동이었다.
2) 동학농민혁명운동의 4단계
집강소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총 4단계로 이루어진 동학농민혁명운동에 대해 고찰해봐야 한다. 넓은 의미의 동학농민혁명운동은 그 전체적 전개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1단계(1894년 2월 17일~4월 8일)가 바로 고부 민란의 단계이다. 고부 민란은 전라도 고부에서 탐관군수 조병갑과 구체제의 가렴주구(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에 견디지 못한 농민 약 1천명이 전봉준을 대표로 추대하고 고부 군아를 습격하여 탐관오리들을 징계하고 군수 조병갑이 수탈해간 수세 등의 양곡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었던 민란이다. 이후 이 민란은 군수가 교체되고 신임군수 박원명이 고부군 농민들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민란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해산하였다. 고부민란은 아직 농민혁명운동이나 농민전쟁이라 할 수 없고, 그 전주곡에 대항하는 소민란 또는 소폭동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2단계(1894년 4월 25일~6월10일)는 동학농민혁명운동의 제1차 봉기의 단계이다. 이것은 전라도 일대의 농민들이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의 지도하에 무장에 남접 도소를 설치하고 봉기준비를 하여 동학 교도를 중심으로 한 약 4천명의 동학 농민군을 편성해서 무장에서 기포하여 먼저 고부를 점령하고, 황토현 전투에서 영병을 쳐부순 후 약 20개 고을의 관아를 점령하고, 다시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을 격파한 다음 전라도 수도인 전주에 입성한 단계이다. 2단계는 본격적인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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