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북한 최승희 무용수 일대기와 느낀 점를 기술하였습니다. 제가 책과 인터넷을 읽어 보고 정리하였습니다.
일대기를 연령대별로 나누어서 기술하였습니다. 또한 사진도 첨부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일대기를 조사하면서 느낀 점을 간단히 기술하였습니다.
바탕체로 폰트는 10입니다..
목차
1. 출생~19세까지
2. 20~29세 사이
3. 30~40세 사이
4. 40~50세 사이
5. 50세 이후부터 죽음까지
6. 느낀 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최승희는 1911년 11월 24일에 태어났다. 출생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강원도 홍천군 남면 제곡리에서 태어났다는 설과 서울 수운동에서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최승희는 유년시절 서울숙명여학교에 다닌다. 일본의 제국주의의 식민화 정책인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재산 대부분이 몰수되고 아버지의 무능과 방탕으로 가세가 기운다.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배려로 장학금을 받는다. 또한 2년이나 앞서는 월반까지 하면서 숙명여학교를 졸업한다. 1926년에 일본 현대 무용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시이 바쿠를 만나고 그의 제자로 들어간다. 이시이를 따라 일본으로 간 최승희는 이시이에게 현대무용을 시사 받으면서 세계적인 무용가 파브로바, 이사도라 던컨, 메리 뷔그만과 같은 사람들의 춤을 보고 현대적 움직임과 표현의 특색들을 연구한다. 최승희는 이시이 바쿠 연구소에서 3년 간의 수학을 하고 고국으로 돌아온다. 1927년 그녀의 나이 16세가 되는 해 고국의 첫무대에서 <세레나데>라는 작품으로 ‘조선의 꽃’,’조선의 미소녀’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성공적인 무용가로 입성하게 된다. 2년 후 1929년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한다. 1930년 2월1일 최승희의 신무용발표회가 처음으로 경성공회당에서 열리면서 무용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최승희는 기방이나 지방 춤꾼들로부터 전통춤을 익혀 전통무용과 현대무용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한다. 1930년 작품 <오야야>, <농촌 소녀의 춤>, <밤이 밝기 전>, <운명을 탄식하는 사람>, <금혼식의 무도>, <인도인의 비애>, <양기의 무용>, <희롱>, <사랑의 춤>, <오리엔탈>, <애수의 여인>, <모던풍경>, <해방을 구하는 사람>, <영산무>, <마즈루카>, <적막한 왈츠>, <오 야-야>, <선녀의 춤>, <그들은 태양을 찾는다>, <달밤에>, <장춘불노지곡>, <스페니쉬>, <방랑인의 설움>, <정토의 무희>, <인도인의 영가>, <집시의 무리> 등 왕성한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참고 자료
정수웅, <최승희-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어느 무용가의 생애와 예술>, 눈빛, 2004
유미희, <20세기 마지막 페미니스트 최승희>, 민속원, 2006
http://ko.wikipedia.org/wiki/%EC%B5%9C%EC%8A%B9%ED%9D%AC
http://www.korea.ac.kr/~gradnews/vs/vs_101.html
http://www.kwnews.co.kr/view.asp?aid=208030700086&s=501
http://search.ytn.co.kr/ytn_2008/view.php?s_mcd=0422&key=200908072336294647&q=TV
http://www.accf.or.kr/contents/board/combi/combiView.asp?bbs_seq=11&action_flag=&search_field=&search_word=&page_no=1&page_str_menu=0203
http://ignorams.egloos.com/327100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0172350535&code=100203
http://blog.daum.net/_blog/BlogView.do?blogid=08mPm&articleno=16154593&categoryId=653536#ajax_history_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