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말 개혁의 두 방향, 이홍장과 강유위
- 최초 등록일
- 2009.07.28
- 최종 저작일
-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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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이홍장의 생애
2. 이홍장의 정계진출
3. 이홍장의 정치활동 - 양무운동
4. 이홍장의 외교활동
1. 강유위의 생애
2. 강유위의 변법론
3. 변법자강운동
4. 강유위의 망명 생활
이홍장과 강유위의 개혁 비교
본문내용
1. 이홍장의 생애
이홍장(李鴻章, 1823~1901) : 자는 소전(少荃), 호는 의수(儀叟), 안후이성(安徽省) 출생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후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공을 인정받아 등용되었다. 그 후 청의 부국강병을 위한 양무운동을 비롯해 중국의 근대화에 힘쓰며 유력한 정치가가 되었다. 이홍장은 정치, 경제 분야 외에도 외교 분야에서 수완을 발휘했는데, 특히 조선 내정과 외교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말년에는 청일 전쟁의 패배와 함께 이홍장의 군대와 세력이 크게 쇠퇴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홍장은 외교관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과 서구 열강과의 평화를 정착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1901년 사망했다.
2. 이홍장의 정계진출
(1) 과거 급제
이홍장은 1847년 25세에 진사에 급제하여 한림원(翰林院)에 들어가게 되었다. 한림원은 당나라 현종 때에 설치한 관청으로, 한翰은 깃털로 만든 붓, 림林은 숲에 비유하여 모인다는 뜻으로서, 옛 중국에서 문필가(文筆家)가 모이는 장소를 한림이라 하였다. 이처럼 한림원은 문장에 능한 선비·학자, 의복술에 능한 사람, 한 가지 예재에 뛰어난 사람들이 뽑혀 모인 곳이다. 당시 한림원은 황제의 조칙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가장 우수한 학자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따라서 과거 합격자 중,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2) 태평천국의 난(1850~1864)
* 홍수전(洪秀全, 1814~1864) : 본래의 이름은 화수(火秀), 족보상의 이름은 인곤(仁坤) 으로, 광둥성 화셴(花縣)으로 이주해 온 중농(中農)의 3남으로 태어났다. 25세 때 세 번째 과거에 실패하고 열병을 앓고 있을 즈음, 승천하여 금발의 노인으로부터 지상의 악마를 퇴 치하라는 사명과 칼을 받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에 1851년, 평화롭고 평등한 지상천국 을 수립할 것을 목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태평천국을 세우고 자신을 천왕이라 칭했다. 1853년에 난징을 점령하고 신국가 건설에 착수했으나 정부의 군사가 난징을 함락하기 전에 병사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