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作家) 김시습(金時習)
1) 서론
김시습은 세종 17년(1435)에 태어나 단동, 세조, 예종 시대를 거쳐 59세인 성종 24년(1493)에 생애를 마감하였다. 다시 말해서 조선 초기인 15세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15세기는 조선이 유학이라는 이념의 가치 아래서 새로운 사회적 기풍을 형성해 나가는 시대였다. 김시습은 이러한 변혁기를 치열하게 살다 간 대표적인 문인이다.
그의 본관은 강릉이며 자는 열경(悅卿)이고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蜂)․청한자(淸寒子)․벽산청은(碧山淸隱) 등 여러 가지로 쓰였다. 그는 또한 불승처럼 법명도 가지고 있었는데 설잠(雪岑)이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그의 가문을 보면 할아버지는 오위부장(五衛部將), 아버지는 음직(蔭職)으로 충순위(忠順衛)를 지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양반이긴 하지만 한미한 무반 가문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의 지배계급인 양반에 속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체제와 지배이념에 대하여 비판적 자세를 취하며, 불교나 도교에 근접하여 탈세속적이면서 현실비판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대의 국외자요, 당대의 문제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소설사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흔히 최초의 한국소설로 알려진 『금오신화』의 작가이기 때문이다. 고대 이후 설화와 그 변형태인 전기(傳奇)의 형태로 전개되어 오던 사사문학이 그로부터 소설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김시습은 고전문학사, 특히 소설가에서는 소성의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로서 우리 문학에 우뚝 선 고봉(高峰)이 된다.
2) 사상
김시습 사상의 중심축은 유교와 불교라는 두 거대한 사상체계와 맞물려 있다. 그에게 있어서 불교는 종교적인 신념이라기보다는 세상을 피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 그는 단호하게 불교를 이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불교가 이단이라는 것은 물론 유교가 정도라고 하는 전제에 입각한 것이다. 이단인 불교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중과 어울려 지낸 것은 다만 물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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