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 최초 등록일
- 2009.05.1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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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원불사를 꿈꾸던 진시황의 흔적들
복잡한 춘추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목차
복잡한 춘추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아방궁(阿房宮)
만리장성(萬里長城)
<참고>
본문내용
복잡한 춘추전국시대를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
진나라를 통일한 진시황은 무적의 군대를 양성하여 강력한 법으로 나라를 통치하여 기원전 221년, 중일국가인 진나라를 건국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전설속의 성군인 삼황오제(三皇五帝)보다 위대하다며 스스로를 시황제(始皇帝) 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자신을 칭할 때 짐이라는 표현을 썼으며, 그 문화가 중국 마지막 왕조까지 2000여 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진시황의 폭군의 모습과 위대한 군주로서의 모습이 있는데 위대한 군주로서의 모습의 진시황은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통일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달랐던 화폐도량형(길이, 부피, 무게 등의 단위를 재는 법), 문자까지도 하나로 통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폭군으로서의 진시황의 모습은 진시황릉을 비롯해 아방궁, 만리장성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습니다. 여기에는 죄수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는데, 그가 통치하던 시절 진나라에는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쓴 죄수들이 길에 가득 했다고 합니다. 또한 책을 불태우고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을 산 채로 파묻은 사건인 분서갱유를 저지르기도 했으며, 말년에는 영원히 살고 싶은 망상에 빠져 불로초를 찾느라 국고를 낭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명의 형성시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국가를 말하라고 하면 동양의 진나라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인류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자신의 제국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 그 주목적이라 할 수는 있겠습니다.
진나라의 대규모 토목 공사, 법가적 정치를 시행한 진나라의 시황제, 통일 이후 시황제의 정치는 가혹하기 짝이 없었고, 늘 과도한 토목공사와 강한 법치주의는 농민들의 반발을 샀으며, 그렇게 때문에 진승ㆍ오광의 난과 같은 농민 반란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공사였는가. 그 진나라의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아방궁(阿房宮)
서안과 중국, 중국역사를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진시황(秦始皇)의 황궁입니다. 지금은 그 모습이 남아있지 않고 흔적만이 있지만, 그 흔적만으로도 규모를 알 수 있을 만큼 거대합니다. 아방궁의 건설은
참고 자료
http://blog.naver.com/gustj86?Redirect=Log&logNo=39186438
http://100.naver.com/100.nhn?docid=104859
http://www.shihwa.net/pandora/wonders/wall/wall0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