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이후에 이르러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적으로 상당한 변화를 보이면서 사상계에서도 유교가 도교나 불교의 세력을 압도하여 다시 그 지배적인 위치를 확립하게 되었으며 이후 명·청대에 와서도 그 위치는 변함없이 되었다. 특히나 송대 이후의 유교는 이전의 한대의 경학이나 당대의 주소학의 성격에서 진일보하여 독자적인 특성을 가지므로 이 송대의 유교를 이르러 ‘송학(宋學)’이라고 불렀다. 송대의 정치, 문화가 지니는 새로운 분위기와 왕성한 의욕을 배경으로 유교에 대한 자유롭고 비판적인 재해석과 창조의 정신이 일관하여 사상. 학술운동을 관통하고 있었다. 송학 내의 한 학파로 출발한 주자학은 이러한 새로운 시대정신과 자세를 기반으로 하여 비교적 늦게 학문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그 당시 이미 정학(正學)운동과 신학(新學)이 풍미하여 오히려 다양한 학파의 사상을 종합,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남송대이후 주자학이 점차 사상계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고 이후의 사상의 발전이 주자학을 그 계승과 극복의 주된 대상으로 삼게 되자 주자학은 송학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로 사용되기 이른 것이다. 특히 주자학은 도교와 불교의 영향으로 인성론과 철학적 사고를 발전시켜 유교를 현저하게 내성화시켰고 이 경향으로 말미암아 우주론과 존재론, 인성론 등 치밀한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 도교와 불교에 대항할 수 있는 계관이나 실천 이념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러면 본문에서는 이러한 주자학의 성립 배경과 발전 과정,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해 지적해 보고자 한다.
1. 주자학의 성립과 배경
송대의 새로운 학문 발전에 영향을 끼친 것은 당대에 발전한 불교와 도교였는데 특히 송대의 성리학은 선종 등 불교에서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철저히 비판하여 이와 결별하고 유학의 사상성을 회복하였다. 특히 송대는 사대부 서민사회의 대두와 함께 지주 계층의 형성, 그리고 문신 관료에 의한 황제 전제 체제의 확립 등 사회, 경제, 정치면에서 그 이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 이른바 `근세적`인 사회에 적합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념적 차원에서 방향 설정을 제시할 수 있는 학문이 필요로 하게되었다.
송대에는 육조, 수·당대와는 달리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각성하는 사대부들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학문과 문화면에서도 깊이 강조되어 그 이전 불교와 도교에 대한 신비주의와 내세관이 사상과 학문을 지배하던 당대까지의 문화 성격을 청산하고 정치 경제적 실용주의와 사회질서의 윤리성 문제가 학문 연구의 주요 과제로 부각되어 학문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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