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의 학문 활동과 성리학적 특징- 『회봉선생연보(晦峯先生年譜)』를 중심으로 (Academic activity of Hoebong Ha Gyeomjin and its Confucian characteristics - Focusing on 『Hoebongseonsaengyeonbo』 -)
한국학술지에서 제공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다양한 논문과 학술지 정보를 만나보세요.
하겸진은 고종 7년에 태어나 나라가 망해가는 혼란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듬해에 이르는 굴곡의 시간을 살았다. 이 논문은 『회봉선생연보(晦峯先生年譜)』를 중심으로 이러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하겸진의 생애와 활동, 저술과 문장, 그리고 성리학 관련 저술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삶과 학문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재구성하고 있다.
먼저 그의 행적에서 주목되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나 대규모의 단체 여행 등 모든 노력은 성리학적 도통(道統)을 지켜내는 길이자 국권을 회복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저술에서 확인되는 목표 역시 도학(道學)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 것이었다. 역사에 대한 그리고 성리학 이외의 다양한 영역에 대한 관심과 성찰도 모두 이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의 학문적 내용에서 확인되는 특징 역시 그가 생각한 도학, 곧 한주학의 충실한 계승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주자로부터 이황을 거쳐 이진상과 곽종석으로 이어진 사문(師門)의 학문이야말로 도통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그는 그 흐름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사실에서 보자면, 한주학은 곽종석을 거쳐 하겸진에 이르기까지 그 기본적인 특징을 고스란히 보존하며 전승되었다고 이해된다. 하겸진 자신은 그 자신의 학문, 곧 성리학적 이념에 대해 한 조각의 회의나 의심도 없었다. 회의하기 보다는 성리학의 경전들을 지키고 계승하는 것, 모국의 언덕을 지키는 것,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과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삶의 목표이자 지향이었고, 그는 또 그렇게 살았다고 이해된다.
영어초록
Ha Gyeomjin was born in seventh year of King Gojong, living through confused times of falling nation, Japanese colonial era, to the next year of independence. This paper focuses on the 『Hoebongseonsaengyeonbo』, reconstructing the pursuits of his life and studies and also what he was seeking, based on these three aspects, the life and activities of Ha Gyeomjin, his works and his writings about Confucianism.
First of all, his exertions like paying attention on education or group tours in large scale was his own way to protect the traditional ethics and recover the sovereingty of nation. His goal that can be found in his writings was to set the tradition of ethics right. His attention on history and many fields other than Confucianism also had the same goal. His characteristic that can be found in his academical works is faithful inheritance of Hanjuhak. For him, the academy of pupillage streaming from Zhu Xi, Lee Hwang, Lee Jinsang to Gwak Jongseok was the stream of ethics. And he himself was a faithful successor of it.
According to these, Hanjuhak had been inherited intactly with its features from Gwak Jongseok to Ha Gyeomjin. Ha Gyeomjin himself had no skepticism or doubt on his learnings, which is Confucian ideology. To protect and suceed the Confucian scriptures, to defend the hills of motherland and not to harm the body and spirit that have been inherited from parents were his goal of life, and he had lived as so.
자료의 정보 및 내용의 진실성에 대하여 해피캠퍼스는 보증하지 않으며, 해당 정보 및 게시물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자료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 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 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의 저작권침해 신고센터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피캠퍼스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만족하는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아래의 4가지 자료환불 조건을 꼭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오류
중복자료
저작권 없음
설명과 실제 내용 불일치
파일의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지 않거나 파일형식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정상 작동하지 않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