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영남과 호남은 노사학파를 중심으로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있었다. 정의림과 정재규, 최숙민 등이 영남과 호남의 학술을 주도했던 인물이었으며, 이들은 합천 三嘉의 雷龍亭, 산청 丹城의 新安社, 長城의 澹對軒, 綾州의 詠歸亭을 중심으로 강회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유학의 학문적 공간을 벗어나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천은사 등 화순과 구례, 하동 등의 사찰을 무대로도 강회 활동을 전개하며 한말 경상 우도를 중심으로 노사학파의 磁場을 확장하여 나갔다. 그 중심에 산청 단성의 ‘신안사’가 있었음도 확인하였다. 당시 경상우도 지역에서는 한주 학단과 성재 학단의 위세가 강하던 시기였으나, 노사학파는 그 속에서도 영남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며 김해, 밀양지역으로까지 문인들간의 교류의 폭을 넓혔다.
영어초록
In the late Joseon Dynasty, Yeongnam and Honam had active academic exchanges centered on the Labor and Management School. Jeong Eui-rim, Jeong Jae-gyu, and Choi Sook-min were leading academic figures in Yeongnam and Honam, and they focused on Eunryongjeong in Hapcheon, Shinansa in Sancheong, Seongdae in Jangseong, and Yeongseong in Gyeongju. The lecture activities were carried out. They went beyond the academic space of Confucianism and conducted lectures at temples in Hwasun, Gurye, and Hadong, including Songgwangsa Temple, Hwaeomsa Temple, Ssanggyesa Temple, and Cheoneunsa Temple, expanding the field of Nohsa School centered on Udo, Gyeongsang Province,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was also confirmed that ‘Shinansa’ in Danseong, Sancheong, was at the center. At that time, the power of the Hanju and Seongjae schools was strong in the Gyeongsang-do region, but the Nosa school expanded its influence to Yeongnam and expanded the range of exchanges among writers to the Gimhae and Miryang reg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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