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청동기시대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출현의 정치·사회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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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23.11.20
- 최종 저작일
- 20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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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한국청동기학회
ㆍ수록지정보 : 韓國靑銅器學報 / 33권
ㆍ저자명 : 김현식
목차
Ⅰ. 머리말
Ⅱ.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출현 과정
1. 연구사
2. 교차편년 비판
3. 방사성탄소연대의 신뢰성
4. 측정자료의 선별과 보정연대의 산출과정
5. 원형점토대토기의 상·하한 연대와 후기 문화와의 병행관계
6.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상한
7. 남한 원형점토대토기와 비파형동검의 출현 과정
Ⅲ.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격
1. 연구사
2. 후기 취락의 구분
3. 원형점토대토기 정주취락의 성격
4. 채광 취락
5.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의 성격 : 남한 최초의 靑銅匠人集團
Ⅳ.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정치·사회적 의미
1. 원형점토대토기 취락의 변천
2. 대장장이에서 제사장으로
Ⅴ. 맺음말
한국어 초록
필자는 교차편년으로 설정된 기존의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연대와 출현 과정에 오류가 있음 을 발견하였다. 이에 방사성탄소연대를 이용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새로운 연대 안과 출현과정을 제 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현재 학계에 뚜렷한 견해가 없는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격에 대하여도 새로 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는 BC 12세기 무렵, 비파형동검과 동시에 출현하였으며, 이후 후기 청동기시 대 송국리문화, 역삼동후기문화, 검단리문화 등과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장기간에 걸쳐 공존하였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은 요동지역‘정치집단’의 이주민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형성 되어 있던‘요동-서북한-남한’의 네트워크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청동장인집단’이다. 이들이 남겨 놓은 유적 중‘수석리유적’,‘교성리유적’등은 당시 청동의 원광석을 채광·선광했던 장소로 추정 되며,‘동학산유적’,‘방동리유적’등은 청동을 제련·주조 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이‘청동장인집단’은 재지 사회의 지배층에게 비파형동검 등의 청동기를 제작·공급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술장인들이었으나 점차 정치력을 갖게 되면서 세형동검단계에 이르러서는 당시 사회의 지 배층인‘제사장’이되고, 결국 삼한 사회의 최상위 지배층으로 성장한다.
영어 초록
South Korean pottery with clay band rim appeared along with the lute-shaped bronze sword around the 12th centuries BC, and later coexisted with the Songguk-ri culture, the late Yeoksam-dong culture, and the Geomdan-ri culture in the Late Bronze Age for a long time. The group of pottery with clay band rim from South Korea is not a migrant from the Liaodong area ‘political group’, but a ‘bronze artisan group’ that entered South Korea through the network of 'Liaodong-Northwest Korea-South Korea' that was formed from the early Bronze Age. This ‘bronze artisan group’ were technical artisans who made a living by supplying lute-shaped bronze dagger to the ruling class of local society, but as they gradually gained political power, they grew into ‘priests’, the ruling class of local society.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