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의승군 전통에 대한 재고: 호국불교의 조선적 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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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ㆍ수록지정보 : 동국사학 / 61권
ㆍ저자명 : 김용태
ㆍ저자명 : 김용태
목차
Ⅰ. 머리말Ⅱ. 호국불교에 대한 연구사적 검토
Ⅲ. 임진왜란의 의승군 활동: 충의와 계율의 충돌
Ⅳ. 승군 전통의 계승과 승역의 관행화
Ⅴ. 맺음말
한국어 초록
본고에서는 호국불교에 대한 연구사를 검토하고, 義僧軍 활동을 ‘忠義와 계율의 충돌’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하였다. 그리고 승군 전통의 계승과 僧役의 관행화
문제를 살펴보았다. 의승군은 불교와 국가의 관계가 얼마나 밀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비록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놓여있었지만 승
군의 전쟁 참여는 살상을 금지하는 계율을 어긴 명백한 범계 행위였다. 또한 당시
에 수행풍토의 약화와 승군 활동 후 환속하는 풍조를 낳기도 했다. 반면 나라를
구하기 위해 계율을 저버리기까지 한 의승군의 충의의 공적은 유교사회에서 평가
받았고 불교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전란으로 승군의 활용가치가 입증됨에 따라 이후 南漢山城의 사례에서 보듯
이 승군 전통의 계승과 승역의 관행화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가는 國役 체계
안에서 승려 노동력을 제도적으로 활용하였고, 그 대가로 승려의 자격과 활동이
용인되고 불교 존립의 토대가 다져졌다. 그렇지만 이는 출세간을 추구하는 불교의
고유한 지향을 전적으로 침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국불교사에서 호국과 호법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이 호국=호법의 틀로 전개되어왔지만, 조선시대 의승군과 승
역은 호국에 중점이 두어진 특수한 사건이자 현상이었다. 이러한 ‘호국불교의 조
선적 발현’은 한편으로는 불교계의 과도한 부담과 국가권력으로의 종속이라는 부
정적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영어 초록
This paper addresses the research history of state-protectionBuddhism and examines the activities of monks’ militia in terms of the
tension between Confucian loyalty and Buddhist precepts. The paper
also investigates the transmission of monks’ militia tradition in Joseon
and its governmental institutionalization. Monks’ militia in Joseon can
serve as a case that shows how close Buddhism and the state can
become. Although the Japanese Imjin Invasions of 1592-1598 threatened
the very existence of the Joseon state, monks’ participation in warfare
definitely violated one of the cardinal precepts of Buddhism, i.e.,
not-killing. It also inevitably led to the secularization of the Buddhist
community of the time: many monks abandoned traditional Buddhist
practices and many of those who had served as monk soldiers returned
to the secular life after the wars. On the flip side, the loyalty that
monks’ militia strenuously demonstrated through their war activities was
clearly appreciated by the Confucian society of Joseon and brought the
change in the Confucian view of Buddhism.
As the state realized the value of monks’ militia in national defense,
it perpetuated the imposition of military and other state services on the Buddhist community, as shown in the case of Namhan Mountain
Fortress (Namhansan seong 南漢山城), which enabled the transmission
of the monks’ militia tradition throughout the rest of Joseon. The state
used the labor power of monks within the system of the state tax,
recognizing the social status and activities of monks and thereby
providing a minimal basis for the existence of Buddhism. However, this
action deflected the unique supra-mundane orientation of Buddhism.
State-protection and dharma-protection had been carried out in Korean
history in the form of the equality of the two as if they had been the
two wheels of a cart. However, monks’ militia and state services
(seungyeok) in Joseon were anomalous cases in which state-protection
was overly emphasized. In the end, Joseon expression of stateprotection
Buddhism left negative effects, causing excessive financial
burden for the Joseon Buddhist community and its subjugation to the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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