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시대 君臣間의 학문 활동 _ 詩經講義를 통해 본 正祖와 丁若鏞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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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16.04.02
- 최종 저작일
- 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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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
ㆍ수록지정보 : 남명학연구 / 16권
ㆍ저자명 : 韓睿嫄
목차
1. 머리말
2. 君民間 학문의 場인 經筵
3. 학자 표祖와 抄啓文臣 丁若鏞의 만남
4. 正祖.丁若鏞의 詩經觀
5. 詩經觀義에 보이는 正祖.丁若鏞의 經世觀
6. 맺음말
한국어 초록
본고는 조선의 경학사에 일획을 그은 君王인 정조와 신하인 정약용의 학문적 만남을 詩經講義라는 텍스트를 통하여 조망한 논문이다. 이들의 만남에 주목하는 이유는 통상의 經筵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군왕이 자신의 의도로 선택한 인재와 질의응답을 통하여 새로운 경학의 세계를 확장하는 보기 드문 케이스이다. 우선 전통적 帝王敎育의 유형으로 정도전 · 권근 · 이황 · 이율곡 등의 사례를 들어 조선시대 경연이 추구하였던 이상적 교육상을 알아보고, 이것에 대응하는 역대 왕들의 경연 참석 상황을 살펴보았다. 정조의 캐릭터는 한마디로 말하면 好學의 學者적 君王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조의 유교적 이상정치와 현실의 실현이라는 점점에 정약용을 비롯한 초계문신이 위치한다. 초계문신 뿐 만 아니라, 정조의 정치적 학운 활동에는 학파 • 지역 · 신분 의 차를 초월하여 다양한 유자가 참여한다. 이러한 열린 학문 활동은 곧 당시 사회의 개방성에의 지향을 엿보게 함과 동시에 보편 문화의 성숙을 알려준다. 『시경강의』를 통하여 살펴본 두 사람의 기본적 경학관은 상당히 유사하다 양쪽 다 주자의 경학적 업적을 존중하지만, 논리상 부합하지 않는 사항에 대해서는 회의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정조는 정약용만큼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정조의 개방적 경학관에 힘입어 주자를 극복하는 정약용의 독창적 견해가 빛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이러한 脫朱子의 경학관은 정조시대의 새로운 학 풍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정약용의 『시경강의』의 내용분석을 통하여 정치와 사회에 관한 두 사람의 견해 를 알아보았다. 특히 ‘賢人 ’에 있어서 정조가 유교의 전통적 賢人觀을 견지하고 있음에 비하여, 정약용은 어느 분야에서냐 기능이든 학문이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매진하여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그를 현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고착화된 신분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安民’의 문제에 있어서는 두 사람 모두 유사한 시각을 노정한다. 安民의 기본조건으로 治者계층의 德化를 중요시한다. 堯舜의 至治를 정치의 이상형으로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현실적 방법으로 治者는 古學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는 것으로 想定한다. 이러한 본고의 고찰을 통하여 정조와 정약용과 갇은 군신 간의 학문적 활동은 글자그대로 敎學相長적인 만남이며, 조선경학의 실학시대를 만개 시킨 動力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영어 초록
Through scrutiny of the text named Si-gyeong-gang-oui, this study examined the academic encounter of king Jeongjo and his subject Jeong Yak-yong, both of which were remarkably active in the Chinese classics history. Their encounter was interesting because they met through a distinctive court seminar which was different from general ones. The king tried to expand the new world of the Chineses classics study through discussion consisting of questions and answers with the one whom he selected in the seminar. This study presented cases of Jeong Do-jeon, Gwon Geun, Lee Hwang and Lee Yul-gok who were involved in emperial education to understand the ideal education pursued by the court seminar of Joseon Dynasty and correspondingly, examined kings' participation in the semmar. King Jeongjo was academic-oriented. He suggested ideal Confucian politics and attempted to realize the ideal, and civil ministers, including Jeong Yak-yong, followed him. Confucian scholars from various schools as well as the civil ministers Participated in king’ s academically-oriented political activities beyond school, region, and status. Such open academic activities indicated that at that time, culture was mature and society was open to everybody. The basic views towards the Chineses classics study of the two were considerably similar when they were examined through Si-gyeong-gang-oui. They respected Juja’s achievements in Chinese classics, but presented doubts and objections about the suggestions with logical inconsistency. Of course, the king’s view was not as original as that of Mr. Jeong, but Jeong’s brilliant view to overcome Juja was supported by the view of king Jeongjo. The new views on Chinese classics, which were a departure from Juja’ s, became a new trend of king Jeongjo’s period. This study examined the two’s views about politics and society through analysing the text of Si-gyeong-gang-oui. In particular, king Jeongjo insisted on the traditional Confucian view about the good and wise king while Mr. Jeong considered any person that reached to the top through their best efforts in techniques or academic activities as the good and wise kings. It was thought that the latter’s view was beyond the fixed idea of a status-oriented society. However, for the issue about the appeasemeent of the people, the two had similar perspectives. They considered a virtue of the ruling class as a basic requirement for the appeasement of the people. They suggested that the politics governed by King Y 0 and Soon was ideal, and to realize the ideal, the ruling class followed ancient teaching. Through the review of the text, this study concluded that academic encounter of king and servant encouraged academic development and were energies to promote the realism at full bloom.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