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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ㆍ발행기관 : 동국사학회
ㆍ수록지정보 : 동국사학 / 44권
ㆍ저자명 : 遠藤隆俊
ㆍ저자명 : 遠藤隆俊
목차
序論一. 義天の入宋
二. 成尋の入宋
三. 十一世紀東アジアの?際環境と高麗, 日本
四. 『?記』と『?集』の史料性
結論
[국문초록]
한국어 초록
본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義天(1055~1101)과 成尋(1101~1081)은 북송의 神宗대로부터 哲宗대에 중국으로 건너간 승려이다. 의천은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서 시호는 대각국사이며, 神宗이 사망했던 元豊 8년(1085, 신종은 3월에 승하하였음) 4월에 중국에 갔다. 그는 14개월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開封과 杭州에서 중국 불교계와 교류하고 경전 수집을 정력적으로 행하여 많은 불전과 불교서적을 고려로 가져왔다. 귀국 후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정치에도 참여하여 鑄錢의 유통 등에 힘을 기울였다. 송나라에서 그가 기록한 것은 『대각국사문집』 및 『외집』(이하 『국집』『외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入宋 승려의 중요한 기록의 하나로서 알려져 있다.尋은 헤이안시대(794~l192) 중기의 일본승려로서 아버지는 藤原씨이고, 어머니는 源씨의 가문이다. 京都 大雲寺의 別堂과 延曆寺 阿?梨, 관백 藤原賴通의 護持僧을 역임한 뒤, 神宗 熙寧 5년(1072)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송나라에서는 천태산과 오대산을 순례하고, 기우제를 지내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수도인 開封에서 입적하였다. 그의 入宋에 대한 기록은 『參天台五臺山記』(이하 『참기』)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본 논문에서는 두 승려가 쓴 일기나 문집을 토대로 하여 당시의 국제 환경을 중심으로 그들의 入宋 의미에 대해 고찰할 것이다. 아울러 당시 동아시아 정세와 그들이 처했던 상황으로부터 일기나 문집의 사료적 성격을 재검토하고자 한다. 이 일기와 문집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특히 『참기』는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어졌는데 송대의 사회·경제·문화는 물론이고 정치제도사의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또한 『국집』에 대해서도 불교학 및 불교사상사의 논문이 다수 있으므로 당연히 본고에서 처음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入宋의 의미 및 11세기 동아시아의 국제환경에 대해서 논했던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이러한 기록이 도대체 어떤 환경 속에서 작성된 것이며, 그 목적이나 집필의 의도가 어디에 있었는가라고 하는 史料論的인 입장에서의 연구도 거의 없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본 발표에서는 11세기 동아시아의 국제 환경이라고 하는 시점으로부터 고찰함으로써 『참기』와 『국집』의 사료적 성격에 대해서 역사학의 입장에서 해독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