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사회)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 최초 등록일
- 2024.10.25
- 최종 저작일
- 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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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24년 인간과사회 공통형 기말과제
"질병, 낙인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독후감입니다.
목차
1. 내용 요약
(1) 한센병 원인에 대한 인식변화
(2) 인종주의와 반쪽짜리 과학의 괴상한 결합이 가져온 비극
(3) 한센병 환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로 인한 사회적 문제
(4) 해방 이후의 소록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낙인
2. 감상
3. 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4) 해방 이후의 소록도, 그리고 끝나지 않은 낙인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마침내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고, 소록도에도 뒤늦게 이 기쁜 소식이 전해져 환자들은 자신들도 인간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게 될 거라는 희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남한 사회는 한센인을 새로운 국가 건설의 일원에서 배제했다.
광복 이후 한국인 의사와 직원 사이에서 소록도의 운영권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는데, 직원들의 투표로 운영권자를 뽑기로 했고 의사들은 투표에서 졌다. 하지만 의사들은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었고, 환자를 이용해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는데, 직원들이 소록도의 물자를 밀반출하려 한다는 말을 퍼뜨린 것이다. 이에 생존에 위협을 느낀 환자들은 직원에게 항의했고, 이에 위협을 느낀 직원들은 치안대를 동원해 환자들 대표 수십 명을 살해했다.
물론 주도권을 찾기 위한 의사들의 행동이 사건 발생의 시발점이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처우나 생활환경 개선에 대한 환자의 요구가 정당했음에도 식민지 시기 일본의 식민지 통치 아래에서 환자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겨온 직원들은 환자를 협상의 대상이 아닌 탄압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잘못 단추가 끼워진 한센인에 대한 인식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을 맞고 미군정의 통치 시기로 넘어가고, 또 여러 번 정권이 교체되었어도 그들에 대한 근본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소록도를 중심으로 하든 환자를 전국으로 분산 격리하든 국가 정책의 핵심은 여전히 강제격리였으며, 한국 사회가 이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일본에서 먼저 한센인을 강제 격리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시작되었는데 결국 일본의 한센인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아냈고,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 대한 책임까지 물었다. 그리고 일본 시민이 자국 일본에 책임을 묻기 위해 한국 시민사회에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도 진상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발표했지만, 일본이나 대만과 달리 국가가 강제격리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고 사회적 낙인과 차별에 대한 성찰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참고 자료
https://www.doopedia.co.kr/, 한센병, 두산백과
http://www.snuh.org/, 한센병, 서울대학교병원 의학 정보
「질병, 낙인 :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김재형, 돌베개, 2021
김재형(2019), 식민지기 한센병 환자를 둘러싼 죽음과 생존, 의사학 제28권 제2호, 대한 의사학회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662,
한센병, 서울아산병원 질환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