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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소개
참고문헌 중 김희경(2022) <질병 낙인 : 무균사회의 욕망과 한센인의 강제격리> 돌베개를 선택하여 독후감(내용요약+감상)을 작성하였습니다.
2024년 2학기 인간과사회 기말과제 참고에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
1. 내용 요약
1) 세균설·인종주의·강제격리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3) 생존과 치료를 향해
4) 소록도, 절멸의 수용소
5) 해방된 조국, 해방되지 못한 사람들
6) 개혁과 반동의 시간
7) 죽어도 되는, 죽여야 하는 215
8) 강제격리 폐지라는 희망
9) 다양해진 강제격리
10) 음성나환자촌
11) 치료를 향한 전 세계의 노력
12) 지금 한센인은 어디에 있는가?
2. 감상
3.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세균설·인종주의·강제격리
소록도는 1916년 병원 건립이 시작되었고, 완공 후 1917년 4월부터 한센병 환자를 받기 시작했다. 당시 한센인에 대한 강제격리법이 시행되기 전이었지만 완치해야만 퇴원할 수 있었기에 강제격리나 다음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소록도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졌다.
노르웨이는 최초로 한센병균을 발견하고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을 고안해낸 한센의 나라다.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한센병은 세균설에 근거해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정책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주로 가난한 농민이었던 한센병 환자들은 자신을 강제격리 시키려는 과학의 힘 앞에서 저항할 능력이 없었고, 사회적 약자인 환자들은 배제되기 시작했다.
한센병에 대해 백인들이 가졌던 인종주의적 시각은 한센이 발견한 과학적 사실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열등한 문명을 상징하는 한센병으로부터 문명의 보고인 유럽과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한센병 환자에 대한 철저한 강제격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백인 과학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은 것이다. 인종주의와 과학은 결합했고, 그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한센병 환자의 비극이 시작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강제격리국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나예방법>으로 강제격리가 시작되었고, <나예방에 관한 건>으로 5개의 격리시설이 전국에 세워졌고, 1909년부터 강제격리가 시작됐고, 이 법에는 퇴소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종생격리도 가능했다.
2) 식민지 조선과 한센병
1917년 부랑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가 시행되자 1920년대 초반부터 부랑 한센병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부랑 한센병 환자는 광주, 부산, 대구 등 남부 도시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다. 해당 관청에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도시의 한센병 환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그러다 1930년을 기점으로 주로 조선의 남부 지방에 집중됐던 도시의 한센병 환자 문제가 점차 북쪽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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