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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일제 식민군항이었던 진해의 부정적 유적에 대해 서술하고,부정적 유적조사와 답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점이 있는지 설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3)진해는 근대에서 식민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한반도의 포츠머스라고 불리웠다.이곳은 평화시에는 물류와 교류의 입구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역사격변기에는 가장 먼저 전장이 되고 수탈의 창구가 되었다. 이러한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중요한 위치이며 격변기마다 한반도의 운명을 함께 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는 진해는 최초의 전장이며,또 최후의 전장이었고, 러일전쟁 당시에는 일본 사령부가 전쟁을 준비하고 전장으로 출동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반도의 좁은 시각으로 서울을 중심으로 변방으로 간주하는 시각은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한 이유 등으로 해방 이후에는 이순신으로 대표되는 민족도시의 인식이 커지고 이 과정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의 우리의 부정적 유적으로의 인식들은 망각 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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