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숭원사원을 찾아서
- 최초 등록일
- 2022.11.27
- 최종 저작일
- 2022.10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3,000원
소개글
1. 교재 3장 ‘향교와 서원’을 참조하여, 향교 또는 서원(서울은 성균관 포함)을 찾아가서 조사한 후 감상문 적기. 아래 내용을 포함하여 작성해 주세요.
목차
1. 숭원서현이란?
2. 방문 일정 및 과정
1) 방문 일정
2) 방문 대상
3) 관람 코스
3. 조사한 내용
1) 향교 / 서원이란?
2) 숭원사원에 관한 정보
3) 숭원사원이 모시는 영정
4. 감상 내용
5. 조사한 곳에서 담당자의 역할을 하거나, 공부하고 있다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의 의미를 서술.
6. 참고문헌
본문내용
'숭현서원'은 현재 대전 유성구에 위치하였으며, 동춘당과 도산서원을 포함하여 대전시에 있는 3대 서원 중 하나로 유명하다.
숭현서원은 정광필·김정·송인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서 정광필(1462∼1538)은 조선 전기 문신. 중종반정으로 부제학에 복직, 이조참판 · 예조판서·대사헌을 거쳐 우참찬으로 전라도 도순찰사가 되어 삼포왜란을 수습한 뒤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김정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로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쳐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시문에도 능하였고 조광조와 함께 사림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저서로는 『충암집(冲菴集)』이 있는데, 여기에 실린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 )」은 기묘사화로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견문한 제주도의 풍토기이다. 시호는 처음에는 문정(文貞)이고, 나중에 문간(文簡)으로 고쳐졌다. 송인수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사헌부 대사헌과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성리학에 밝았고 성리학을 보급하기에 힘썼다. 평생 학문을 좋아하여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며 제주의 귤림서원(橘林書院)에 제향 되었다. 선조 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규암집(圭菴集)』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숭원서원은 16세기 후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숭원서원은 1592년 나라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숭현’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인조 19년(1641)에 이시직과 송시영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는데, 서원 안에 별도의 건물을 마련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1년(1609)에 복원되었고 후에 김장생·송준길·송시열 등을 추가로 모시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폐쇄된 후 복원하지 못하고 현종 8년(1667)에 세운 비석만 남아 있다. 1994년 발굴 조사한 결과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교육 장소인 강당, 이시직과 송시영의 위패를 모시던 별사 등의 건물터를 확인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문화와유물유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출판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