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찾아서 ) 교재 제4부 근대화와 도시의 변모 를 참고하여 자신의 거주하는 지역을 답사하면서 근현대시기동안 변모의 흐름을 찾아볼 것.
- 최초 등록일
- 2021.03.05
- 최종 저작일
-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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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서론
2.본론
(1) 근대화의 출발, 인천
1) 차이나타운
2) 자유공원
3) 제물포 구락부
(2) 철도문화의 중심지, 대전
1) 충청남도청
2) 동양척식주식회사
(3) 신문화의 시작, 대구
1) 선교사들의 주택
2) 이상화 고택
3.결론
4.출처 및 참고문헌
본문내용
1.서론
세계는 사회분업의 다양화로 인한 분화와 기능의 전문화 및 발전으로 인한 각 국가의 통합으로 인해 점차 발전해왔다. 이러한 분화와 통합이라는 세계적인 흐름 안에서 우리나라는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함으로써 점진적 근대화의 길을 걸을 수가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1945년 8월 15일 해방된 이후로부터 정치 경제적, 문화적으로 세계사회에 동참하며 빠른 경제개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근대화는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한국 주요 도시의 변모도 필연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 이에 근대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각 도시는 어떠한 변모를 했는지 근대화의 주요 도시인 인천과 대전, 대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근대화 이후 도시의 변모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의 한국이 어떠한 모습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지 방향성을 찾을 예정이다.
2.본론
(1) 근대화의 출발, 인천
인천은 근대화의 출발이라 불릴 만큼 개항 이후 신문물과 외국인이 들어온 첫 관문이었다. 이는 인천이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인 동시에 산업화 시기에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기회의 땅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인천은 1883년에 개항되었으며, 개항 당시의 인천은 총 10개면이 있었는데, 개항과 함께 제물포가 근대 인천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이후 인천은 조미수호통상조약, 한일간의 제물포조약, 조·영 및 조·독 수호조약 체결 등 각종 조약의 체결로 인해 각국의 영사관이 설치 인천에 설치됐다. 이로 인해 인천은 통상의 중심지가 되며 근대화 도시의 기틀을 닦았다. 2020년 현재는 총 8개의 구와 2개의 군으로 행정구역을 나누었다.
이처럼 인천은 개항을 중심으로 많이 발전했다, 이에 본문은 개항기 유적과 관련된 도시의 변모를 통해 인천의 근대화를 알아보고자 한다.
1) 차이나타운
1호선 인천역에 내리면, 출구 바로 앞에서 차이나타운과 패루를 만날 수 있다. 차이나타운은 1883년에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중국인들이 현 선린동 일대에 이민, 정착하여 그들만의 생활문화를 형성하며 생긴 장소이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조계제도가 폐지되지 전까지 인천은 한반도의 가장 넓고 큰 출입문의 역할을 했다.
참고 자료
인천차이나타운 (두산백과)
인천 차이나타운 - 자장면의 발상지 (소읍기행, 이다일, 경향신문)
자유공원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2010. 1. 15., 최정규, 박성원, 정민용, 박정현)
제물포구락부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구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舊 東洋拓殖會社 大田支店] (두산백과)
선교사스윗즈주택 [宣敎師─住宅]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상화 고택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대전광역시 종무문화재과, 『모던대전 근대 사진엽서로 보는 100년 전 대전』 (대전광역시, 2013), p. 110.
문화재청, 문화재청 사이트, “대구 근대화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