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영상학과] 2013년 1학기 한국사의이해 기말시험 핵심체크
* 본 문서는 PDF문서형식으로 복사 및 편집이 불가합니다.
목차
제1장 원시사회와 고조선제2장 삼국
제3장 통일신라와 발해
제4장 고려의 성립과 발전
제5장 고려 후기의 사회 변화
제6장 조선건국과 새로운 기틀
제7장 조선 전기 사회변화와 외세침략
제8장 조선 후기 경제발전과 사회동향
제9장 사회모순의 심화와 농민항쟁
제10장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근대변혁운동
제11장 대한제국의 좌절과 일제의 한국 강점
제12장 일제의 식민지배와 민족해방운동의 발전
제13장 전시동원체제와 항일무장투쟁
제14장 해방과 분단
제15장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대장정
- 각 장별 출제예상문제 및 해설 -
본문내용
제2장 삼국1. 삼국과 가야의 성장
(1) 고구려의 건국과 성장
1) 고구려의 건국
①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압록강 중류 유역의 졸본에 나라를 세움
② 지리적 위치
- 압록강 중류 유역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많은 요새지로서 기후도 비교적 따뜻하고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으로,맥족(組族)이 살고 있었음
-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산간 지대이고 땅이 척박하여 힘써 농사를 지어도 식량이 모자라는 지역
- 식량이 모자랐기 때문에 고구려는 일찍부터 전쟁을 벌여 식량과 물자를 빼앗아오고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데 힘씀 → 강력한 전사 집단을 형성, 중국 세력의 침략도 막아냄
③ 청동기시대의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기원전 4-3세기 무렵부터 철기 사용이 확산되면서 농업 생산과 인구가 증가
-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집단 간의 교류가 촉진, 중국 군현과의 교역도 활발
③ 나
- 유력한 집단을 중심으로 일정한 범위의 계곡이나 하천 유역의 마을들을 규합한 지역 정치 집단을 ‘나’라고 하며 각지에 형성
- 소국과 같은 집단 인 나는 주변 지역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연합을 이루면서 더 큰 집단을 형성
- 나 집단들이 연합하여 연맹체를 이루었음
④ 5부체제
- 소노부 집단이 우세했으나 주몽의 무리가 계루부를 이끌면서 점차 연맹체의 주도권을 차지
- 계루부의 통제 아래 나 집단은 5부로 정리: 계루부,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 5부체제: 고구려는 계루부를 중심으로 한 5부 연맹체가 지배하는 체제를 이루었음
⑤ 지배체제
- 고구려는 정복 전쟁을 활발히 벌이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점차 중앙정부의 통치를 강화
- 밖으로 한(漢)의 세력 확대에 맞서면서 안으로는 통합을 추구하여 1세기 후반 태조왕 때 고대국가 체제를 확립
- 중앙정부는 무역, 외교, 군사 등 대외적 업무를 관장하고, 중요한 국사는 왕과 왕족 및 5부의 대가들이 회의를 열어 결정
- 부 집단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자치권을 인정하였으나, 점차 중앙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자치권 약화
- 중앙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여 5부의 족장들을 중앙 귀족으로 편제하고 관등 조직을 갖춤
⑥ 세력확장
- 현도군, 낙랑군을 고립, 옥저, 동예등을 정벌 → 동해안의 풍부한 물자를 공납으로 받게 되었고 대륙 세력의 침략에 맞서 전쟁을 할 때에도 후방기지를 확보하게 됨
⑦ 진대법
- 춘궁기에 나라의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는 제도
- 2세기 말 고국천왕은 한미한 집안출신인 을파소를 국상으로 삼아 권력을 강화하면서 진대법을 시행
- 진대법의 실시는 식량이 충분히 비축되어 있었고 국력이 강하였기 때문에 가능했음
⑧ 기타
- 왕비를 절노부에서 맞아들여 왕비족과 연합하여 왕권을 강화
- 친족 집단의 공동체적 관계 약화: 산상왕 때에는 왕위계승도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바꾸었음
- 아울러 형수를 아내로 맞는 혼인풍습도 사라짐
2) 국내외 정세
① 3세기
- 3세기 중엽에 강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요동 진출
- 철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요동은 중국에게는 동방 진출의 근거지, 고구려에게는 외침을 막는 방패가 되는 요충지
- 고구려가 요동을 선제공격하였으나, 244년과 245년 위의 침공으로 환도성이 함락되고 왕은 피신
- 중국은 당시 위, 촉, 오로 삼국이 정립하여 있었는데 위가 요동지역을 평정한 후 고구려에 침공
- 259년 침략해온 위의 군대를 격파 후 군사 재정비
② 4세기
- 중국에서 진나라가 무너지고 5호16국시대 도래
- 중국 군현을 적극적으로 공략, 낙랑군과 대방군, 현도군 점령 → 요동 지역의 선비족의 전연을 공격하여 했으나 전연이 먼저 쳐들어와 수도 국내성이 무너지고 고국원왕의 모후와 왕비, 남녀 5만 여명이 포로로 붙잡혀 갔으며 선왕인 미천왕의 시신까지 파헤쳐 감
- 결국 고구려와 전연은 우호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음
- 요동진출이 무산되자 이후 고구려는 평양일대의 경영에 주력: 신라와 우호관계, 백제와 대립
- 백제는 활발한 외교활동을 펼치며 중국, 가야 및 왜와 연결되는 교통로를 확보하려고 하였으며 근초고왕은 한반도 남부지역을 차지
- 중 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