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배경
1. 병인박해 (1866)
2.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3. 병인양요(1866)
4.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1868)
5. 신미양요(1871)
6. 척화비 건립(1871)
Ⅱ.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의의와 한계
본문내용
병인박해 (1866)
(1) 배경
• 러시아의 남하, 조선으로의 접근(함경도 경흥부에 와서 통상 요구) → 흥선 대원군이 프랑스를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려 함 → 국내에서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도움을 구함 → 프랑스와의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패
• "운현궁에도 천주학쟁이가 출입한다"는 소문이 퍼지고 조대비 이하 정부 대관들이 가톨릭 교도의 책동을 비난하며 천주교를 금지하라는 양반 유생들의 주장이 거세짐
(2) 전개 : 흥선 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여 남종삼, 정의배 등을 포함한 국내 천주교 신자 8000여명과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처형
제너럴 셔먼호 사건(1866)
(1) 배경 :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와 통상을 요구
→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가 이를 거절
→ 미국 선원들이 평양까지 와 조선인 관리들을 살해하고 민가에서 물자를 약탈
*제너럴 셔먼호는 80급 증기선으로 12파운드의 대포 2문을 갖추고 선원은 완전 무장하고 있었다.셔먼호의 승무원 구성을 보면, 선주 프레스턴, 선장 페이지(Page), 항해사 윌슨(Wilson) 등 미국인 3명, 통역 담당 토머스, 화물 관리인 호가스(Hogarth) 등 영국인 2명, 그리고 기타 중국인과 말레이시아인 19명으로 총 24명이었다.
(2) 전개 : 평양 감사 박규수를 포함한 평양의 관리들이 주민들과 함께 제너럴 셔먼호를 불태워 침몰시킴
병인양요(1866)
(1) 배경 : 병인박해 당시 탈출에 성공한 펠릭스 클레르 리델 신부가 톈진에 있는 프랑스 인도차이나함대 해군사령관 피에르 로즈 제독에게 천주교 박해와 프랑스 신부의 죽음에 대해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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