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사(교육철학 및 교육사) 시험 요약
- 최초 등록일
- 2021.09.09
- 최종 저작일
-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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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교육사(교육철학 및 교육사) 시험 요약
관련 강의: 교육철학 및 교육사
목차
1. 고구려의 교육
2. 백제의 교육
3. 신라의 교육
4. 고려시대의 교육
5. 조선시대의 교육
본문내용
1. 태학
삼국사기에 의하면 태학은 소수림왕 2년에 중국의 학제를 본받아 국가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주로 상류계층의 자제를 교육시켰던 관학이다. 국가 건립 초창기에 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기르기 위해서는 국가 주도의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세워진 것이 바로 태학이라고 할 수 있다.
태학의 입학 연령은 15세였으며 입학 후 9년 간 수학하였다. 태학의 주요 교육과정으로서는 오경(시전, 서전, 주역, 예기, 춘추)과 삼사(사기, 한서, 후한서) 등 유학의 경전들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경전들을 가르쳤는가? 이들은 바로 유교 경전에 능통했던 태학박사들이었다. 이는 중국의 고구려 관련 사료에서도 태학박사란 직함이 발견되고 있고 삼국사기에서도 태학박사란 이름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로 박사들이 교육을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는 태학 이외에도 국자학이라는 학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당시 중국의 동진이 385년에 국자학을 설립함으로써 태학, 국자학의 양학 제도를 운영했으며, 그 후에 고구려가 관계를 맺은 남북조 역시 국자학 제도를 두었다는 점에서이다. 또 중국에서 641년에 편찬된 한원이란 책의 고려기에 국자박사, 태학박사가 있어...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점에서이다. 이러한 사료들에 비추어 볼 때 고구려에는 태학 이외에도 국자학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고구려의 고등교육은 주로 태학과 국자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2. 경당
우리의 교육 역사상 최초의 사학으로 알려진 경당은 정확한 설립 연대를 알 수는 없으나 독서와 활쏘기 등 문무교육을 겸했던 초중등 교육기관이었다. 경당의 성격은 다음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풍속이 서적을 좋아하여, 누추한 문에 땔나무를 해서 사는 집에 이르기까지 네 거리에 커다란 집을 짓고 이를 일컬어 경당이라고 하는데, 자제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밤낮으로 여기서 독서와 활쏘기를 한다. (구당서 권 199상 열전 149상 동이 고려조)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