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F몰 이벤트
  • 파일시티 이벤트
  • 서울좀비 이벤트
  • 탑툰 이벤트
  • 닥터피엘 이벤트
  • 아이템베이 이벤트
  • 아이템매니아 이벤트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 상 (초대, 중세편)

검색어 입력폼
저자
존 우드브리지
독후감
2
책소개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교회사, 기독교 사상사 교수 존 우드브리지의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 상권 《초대 중세편》. 초대와 중세의 기독교회의 특정 지도자 집단을 구성하는 인물들의 삶과 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회사적 위치를 평가하면서 중요한 업적, 저술, 그리고 영적 시각 등에 대해...
  • 중세교회사 독후감
    중세교회사 독후감
    이번 학기에 중세교회사를 들으며 바뀌게 된 고정관념이 있다면 ‘중세는 암흑기이다’라는 생각이다. 곧 중세의 교회를 부정적으로만 보거나 타락한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셨던 중요한 시기로 봐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개혁주의와 칼빈주의를 강조하는 우리 교단의 신학적 정체성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중세교회사 수업을 듣기 전에는 중세를 신앙적, 영적 침체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성직 매매, 성경의 권위를 추월한 교회의 권위 등 당시 교회의 부패가 극에 달했기 때문에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Ad Fontes’ 의 정신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렇기에 종교개혁 이전의 교회, 즉 중세교회는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신앙을 따랐던 교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가 추락한 교회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중세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고자 했던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이를 큰 움직임으로 만들려고 했던 운동들이 있었음을 이번 학기의 수업을 통해 배우고 있다. 그렇기에 중세는 암흑기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암흑 속에서도 빛나는 보석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던 시기로 여길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의 전환의 연장 선상에서 이번 수업을 통해 접하게 된 ‘중세의 성경연구’는 제목부터 흥미로웠다. 종교개혁에서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성경’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의 구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으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의 회복을 말한다. 종교개혁의 파급력이 커지게 된 원인 중의 하나로 일반 대중들의 언어로 성경이 번역된 점을 꼽는다. 당시에는 라틴어 성경이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어서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사제들이나 일부 지식인들만 성경을 접하고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중들은 성경 자체를 직접 접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제를 통해 해석되고 전달되는 내용을 통해서만 성경을 알 수 있는 제약이 있었다.
    독후감/창작| 2022.12.15| 10 페이지| 1,500원| 조회(65)
  •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 (초대~중세)
    인물로 본 기독교회사 (초대~중세)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이그나티우스는 시리아 안디옥의 제3대 감독이었다. 그가 트라얀 황제(주후98-117) 치세에 로마로의 순교 여정 도중 기록한 7개의 편지는 이른 바 사도 교부들의 문헌 즉, 1세기 말엽에서 2세기 초엽까지의 초대교회 문서 가운데서 지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그나티우스가 바울이 편지를 보낸 두 도시 즉 에베소와 로마,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일곱 도시 가운데 세 도시 즉 에베소, 빌라델비아, 서머나에 서신을 보냈다는 것은 의미 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우리가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그의 서신에서 부수적으로 드러난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상세한 것을 알 길이 없다. 그가 로마인들에게 체포된 이유도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는 열명의 로마 군인들에게 붙들려서 압송되어 가는 도중 소아시아를 가로질러 서머나에 이르렀을 때 거기의 폴리캅 감독에게 영접을 받고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등지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안을 받는다. 이어서 이그나티우스는 북으로 드로아를 거쳐 선편으로 네압볼리에 이른다. 그리고 빌립보를 지난 다음 에그나티안 로를 이용해 마게도냐를 가로질러 로마로 갔었다. 이그나티우스는 바울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의 글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바울처럼 이그나티우스도 가현론자들의 그리스도관에 맞서 싸웠다. 가현론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성육신하지 않고 외견상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교리이다(요4:1-3, 요이7을 보라). 교회를 하나 되게 하는데 있어 이그나티우스는 감독의 역할을 몹시 강조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감독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그나티우스가 주후 108년 경 트라얀 황제의 치세에 로마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은 폴리캅, 이레니우스, 유세비우스 그리고 제롬이 증언하고 있다. 4세기와 5세기에 유래된 후대 전설집의 기사에 의하면 그의 뼈가 수거되어 안디옥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이 유골은 나중 6, 7세기 경에 로마로 이관되었다.
    독후감/창작| 2020.07.28| 45 페이지| 3,000원| 조회(102)
AI 챗봇
2024년 06월 02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5:39 오후
New

24시간 응대가능한
AI 챗봇이 런칭되었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