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신감과 행복을 선물하는 스칸디 교육법!자신감과 행복지수 세계 최고인 북유럽 육아와 교육의 비밀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저자인 황선준은 국비장학생으로 스웨덴 유학길에 올라 스웨덴 감사원 및 국립교육청을 거친 스웨덴 교육통이고, 공저자이자 그의 아내인 황레나는 15년 동안...
누군들 그렇겠지만 나는 사춘기 시절 엄마와 아주 많이 다퉜다. 하루빨리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고,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인서울'이 내게는 장래를 위한 선택이 아닌,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그러나 수능을 보고 학교 정문을 나오는 순간 썩은 동아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서울을 못했다는 좌절감에 한동안 계속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다행히 내가 기숙사를 들어가며 엄마와의 싸움은 끝이 났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 엄마의 사랑 또한 분명하다. 돌이켜 보면 엄마는 나를 자신의 것이라 여겼고, 나는 모든 것을 엄마의 탓으로 돌렸던 것이 문제의 근원인 듯싶다.
엄마와 많은 잡음이 있었던 어린 시절 때문인지 자녀 교육에 대해 관심이 많다. 연일 화재인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며 송일국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다. 육아에 ‘육’ 자도 모르지만 어쩐지 정석 같아 보인다.
나는 가끔 가정에서 남편과 또는 자녀와 부딪히거나 어려운 감정을 풀어내기 힘겨울 때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보며 나의 철든 마음과 행동에 스스로 감동을 받는다.
이전에 나는 참으로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고 어른들에게 예의보다는 이유 없는 반항을 하며 스스로를 참 삐딱하게 구는 것을 영웅인 것처럼 생각하고 세상도 그렇게 기울게 보고 친구들과도 그런 세상을 우리만의 언어로 공유했다. 학교에 가는 것도 공부는 싫었지만 그런 친구들이 있어 즐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요즘 그렇다. 그래서 난 충분히 공감이 간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나 우리 딸이 다니는 지금의 초등학교나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우리가 자라던 세대도 역시 언제나 공부가 먼저였다.
한밤중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멀리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음만이 간간이 들이는 이 시간이 오로지 필자만의 시간이다. 요즘 며칠, 필자만의 시간에 학부모로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귀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가 바로 그 책이다. 교육여건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와는 차이가 있는 스웨덴의 교육 이야기를 쓴 책이다. 한국에서 살던 저자가 유학 중 스웨덴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터득하게 된 북유럽 교육의 모습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필자는 많이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한 가닥 희망을 보게 되었다. 저자가 그랬듯 필자에게도 변화는 가능할 것이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결혼 후 10년을 육아에 전념하다가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나름 육아에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고, 부모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살아도 될 시기라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좋은 부모란 도대체 어떤 부모일까?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오로지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일까? 아니면 맹자의 어머니처럼 자식 교육을 위해 삼천지교의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걸까? 필자는 과연 내 자녀에게 훌륭한 부모인가? 온갖 생각으로 복잡하던 터에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치열한 경쟁에 던져지며 수많은 시험에다 예체능 과목조차도 등급이 매겨지는 우리 아이들. 개성을 인정하기보단 실력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사회에서 부모인 필자도 언제부턴가 조바심을 내며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놀이조차도 학습에 연관 지으면서 ‘다 너를 위한거야!’라고 윽박질렀다.
아침에 아이를 깨워 등교시키고, 흩어진 옷가지와 방청소를 하며 일분이라도 편히 자고 쉬길 바라는 필자의 마음이 아이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을 늦추는 것 같아 책장을 넘기는 내내 미안했다. 경쟁이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아이에게 늘 한 발짝 위로 올라가는 길만 가르쳤지 친구와 화합하는 방법, 자립심 등은 길러주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