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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등록일
- 2007.01.11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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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당 서정주의 약력과 서정주시 분석
목차
1. 들어가며
2. 약력
3. 서정주 시 분석
본문내용
증앙불교전문학교를 수학하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같은 해에 김동리.김달진.오장환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을 주재하는 등 활발한 시단 활동을 벌였다.
서정주가 친일작품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42년 7월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 를 매일신보에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친일시인으로 작심하고 친일 어용 문학지 [국민문학]과 [국민시가]의 편집일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친일작품을 양산했다. 당시의 문단 비중에 비해서 상당한 분량의 친일작품을 남긴 것이다. 평론 1편, 시 4편, 단편소설 1편, 수필 3편, 르포 1편 등 합계10편의 친일 작품을 썼다.
친일작품을 연대별로 살펴 보면 1942년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시가에 대하여], 1943년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인보(隣保)의 정신] [스무살 된 벗에게] [보도행], 시 [항공일에] [헌시(獻時)], 소설 [최체부의 군속 지망], 1944년 시 [무제] [오장 마쓰이 송가] 등이 있다.
서정주는 친일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나서 1943년 10윌 엿새 동안 일본군 경성사단의 추계 훈련에 종군하고 참관기를 쓰기도 하였다.
해방 후 조선청년문학가렵회 시분과 회장을 맡고 문교부 초대 예술과장,한국문인협회 회장 등 문단의 감투를 쓰고 이승만의 전기를 접필하는 등 `정치문인`으로 5공화국 때까지 맹렬한 활동을 했다.
2. 약력
시인. 호는 미당(未堂).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출생/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漢學) 수업. 전북 부안군 졸포보통학교 수료.서울 중앙고보 및 전북 고창고보 중퇴.방랑생활. 1931년 고승 박한영 대종사 문하에 입산,서울 개운사 대원암의 중앙 불교 전문강원에 입학, 그 뒤 중안 불교전문학교에서 수업.1936년 신춘문예에 시 ꡐ벽ꡑ이 당선되었다. 시동인지 편집 겸 발행인,동인은 김돌이.이용휘.오장환. 등이 었다. 1938년 화투패를 떼 보고 선을 본 방옥숙 여사와 결혼하고 첫 시집 ꡐ화사ꡑ를 남만서고에서 출간, 그뒤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황막한 강산을 떠돌고 서울의 여기저기에 기류하다가 만주로 방랑,안동안 간도에서 양곡주식회사 경리사원으로 있었고 용정에도 가 있었다. 일제 말기를 고향과 서울에서 전전하다가 해방을 맞았다.1946년 시집 ꡐ귀촉도ꡑ가 선문사에서 출간되어 시단에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