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4.12.11
- 최종 저작일
- 2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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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박물관의 일대기
2.이우찌 선생의 전시실
3.끝마치며
본문내용
-8·15광복 이전의 박물관
1908년 9월 기울어져 가는 국운 앞에서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은 창경궁 내에 황실박물관을 발족시켜 우리나라 박물관의 시초를 이루었다. 내생각과 순종의 생각이 일치했다고 생각한다. 한나라의 문화가 제대로 잡혀있는 것이 얼마나 큰도움이 되는지 순종은 알았던 것 같다.황실의 재정적 지원으로 삼국시대 이후의 불교공예품, 고려자기, 조선시대의 회화, 역사풍속도 등을 주로 수집하여 1909년 11월 창경궁을 공개하면서 식물원 동물원과 함께 황실박물관도 일반에게 공개하였다.우리가 이번에 안 사실인데 창경원을 모두다 동물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는데 왜 근데 나중에 창경궁이 동물원으로 돌변했는지 의문을 풀지 못했다.암튼 그 후 총독부박물관이 설립되면서 황실박물관은 이왕가미술관으로 격하 개칭되었다.이왕가미술관이라는 자체가 이씨왕족의 미술관이라는 것이겠지...우리나라의 뿌리를 알 수 있는 유물은 전시하고 있던 박물관이 순간 한 가문의 미술관으로 전략해버리다니..슬픈과거이다.1910년 일제강점 이후 일본은 조선총독부의 시정 5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위하여 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하고 1915년 12월 1일 공진회 당시의 미술관 건물을 본관으로 하여 총독부박물관을 발족하였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적조사에 의한 수집품과 매장유물의 국고귀속품, 구입품, 그리고 각 사찰의 기탁품등을 중심으로 역사, 미술공예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었다. 건물 이외에도 수정전(修政殿), 사정전(思政殿), 근정전(勤政殿)과 회랑(廻廊)등 경복궁의 전각을 이용하여 시대별 역사적 전시방법으로 전시활동이 시작되었다.따로따로 떨어져 분산된 유물들과 궁궐에 자리잡은 유물들이 관연 그고귀함을 보장받았을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