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선교사 대전(선교문화인류학)
- 최초 등록일
- 2024.04.24
- 최종 저작일
- 20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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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네스토리우스 Nestorius
네스토리우스는 381년 안티오키아 근처에서 페르시아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안티오키아 학파 사상에 깊이 물든 인물이었다. 수도회 사제로서 뛰어난 설교로 이름이 높았던 그는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428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된다.
네스토리우스는 주교가 되자 각종 이단들을 물리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신학논쟁을 중재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성모신심이 고조되던 때여서'하느님의 어머니'란 용어가 널리 사용됐는데 일부 안티오키아 학파 출신 신학자들이 성모는 인간 예수만을 낳았기 때문에'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를 수 없고 단지 '인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쟁의 해결책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명칭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성모님은 인간 예수만을 낳으신 분이지 결코 신 예수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완전한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강조된 것이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이러한 주장은 즉시 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심한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이단으로 핍박받으며 죽어가면서까지 정통 그리스도교를 사랑하고 또 정통 그리스도교 안에 남아 있고자 했다. 죽을 때까지 정통 그리스도교 노선을 포기하지 않으며, 비록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정통 그리스도교가 무지 때문에 싸우고,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굳은 신념과 의지로 끝까지 믿음을 지켜낸 모습에서 어떤 핍박과 박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구원자 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지켜내는 믿음이 필요하다.
마테오 리치 Matteo Ricci
마테오 리치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귀족이었는데 아들에게 법률공부를 시키려고 로마로 유학을 보냈으나 그는 로마에 와서 예수회의 영향을 받고 예수회에 가입하여 학업에 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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