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에서 김구와 이승만의 선택과 진로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와 평가
- 최초 등록일
- 2020.03.24
- 최종 저작일
- 2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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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정국에서 김구와 이승만의 선택과 진로에 대한 역사적인 의미와 평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서론
II. 본론
1. 김구와 이승만의 성장과정 중 공통점과 차이점
2. 독립운동
3. 해방과 건국운동으로 같은 현실과 다른 이상
Ⅲ.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론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매 시대마다 외세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에 대응해왔고 특히 근대에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서구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소로도 수많은 타국 간의 전쟁터로서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 중 제일 고통스러웠던 시기는 1910년부터 광복이 이루어지는 1945년 8월 15일까지는 '일제강점기'로 정치적, 외교적으로 독자적 권한이 없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많은 우리 국민이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야 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끊임없이 항거하였다.
국내에서는 민족 부르주아지들을 중심으로 애국 계몽 운동이 벌어졌고 비밀결사들이 조직되어 활약하였다. 또한 국외에서는 일부 의병들과 신민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무장 항일 단체가 생겨났고 대한광복군정부, 홍범도가 이끈 대한독립군 등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가가 있다.
이들 중 일제하의 독립운동가로 해방 후에는 건국·통일을 주도한 지도자로 한국근현대사에 큰 자취를 남긴 김구와 이승만의 인물 비교를 통해 역사적 의미와 현실의 민족 문제를 생각해 보고 평가를 해 보려고 한다.
II. 본론
1. 김구와 이승만의 성장과정 중 공통점과 차이점
1) 신분적 배경
독립운동과 정부수립에 일생을 바친 백범 김구(김창수)는 고종 13년 8월 1876년 황해도 해주군 기동에서 김순영과 곽낙원 사이의 7대 독자로 태어났고 호는 백범, 존명은 창수였으나 후에 구로 개명하였다.
대한민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종교인, 교육자, 통일운동가, 정치인이며 한인애국단을 이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5세 때는 한학을 배웠으며 과거 공부에 열중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또한 1926년 12월에 그가이동녕으로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형 취임 교섭을 받고 일단 사양한 이유는 자신 같은 미천한 신분을 가진 사함이 일국의 수반이 된다는 것은 국가[임시정부]와 민족의 위신에 관계가 있다고 하였다.
참고 자료
이재학, 『정치인물로 읽는 우리 역사』교안
김명섭, 『김구와 이승만의 지정인식』
신욱희, 『이승만의 역할인식과 1950년대 후반의 한미관계』
정진석, 『두 거인의 비교평전과 탈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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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072072&cid=40942&categoryId=34299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2534&cid=46626&categoryId=46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