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민족운동(농민운동) 소논문
- 최초 등록일
- 2017.01.06
- 최종 저작일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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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1920년대 농민운동의 배경 및 사상
1. 토지조사사업
2. 3 1 운동
3. 진보사관과 ‘개조론’
4. 사회 진화론과 사회주의
Ⅲ.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1. 개론
2. 조선노농공제회
3. 조선노농총동맹
4. 조선농민총동맹
Ⅳ. 토지혁명론
1. 개론
2. 토지혁명론의 전개
3. 토지혁명론의 발전
Ⅴ. 1920년대 농민운동의 전개
1. 1920년대 일제의 농업정책
2. 1920년대 전반기운동
3. 전라도 신안군 암태도 소작쟁의(1920년대 초반기)
4. 경상북도 안동군 퐁산 소작쟁의(1920년대 초반기)
5. 1920년대 전반기운동
6. 전라북도 욱구군 이엽사농장 소작쟁의(1920년대 후반기)
7. 함경남도 갑산 화전민 항쟁(1920년대 후반기)
Ⅵ. 맺음말
Ⅷ.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조선시대 세도정치시기 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수탈 등으로 인해 농민들의 민란이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개방이후 조선은 일본 및 각 국가에 의해 경제침탈을 당했다. 이에 고종 26년(1889) 함경도 감사 조병식이 곡물의 일본 수출을 금지한 방곡령을 실시하기도 했고, 일본의 압박에 의해 조선은 농업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국유지와 민유지를 약탈했고, 농업이민정책을 병행했다. 1904년 일본은 황무지를 개척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국토의 1/3에 해당하는 전황지를 약탈하려 했으나, 관 민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일제치하 상황에서 농민 노동자들은 일제 강점기 내내 억압과 수탈에 맞서 거세게 저항하였다. 1920년대 초반 사회주의자의 지도를 받아 계급해방과 민족해방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고 조선 공산당의 결성을 계기로 민중의 일상 이익을 옹호하는 투쟁을 일제 자본주의 지주제를 타도하는 민족혁명운동으로 발전시켰다.
1920년대 민족운동 중에서 농민운동을 선택한 이유는 나라의 주인은 시민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어떠한 행동들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 中(중) 하나는 당시 농민들의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1920년대 농민운동의 배경, 농민운동 조직의 발전, 토지혁명론, 1920년대 농민운동의 전개에 대해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결론 및 나의 생각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Ⅱ 1920년대 농민운동의 배경 및 사상
1. 토지조사사업
일제 강점기 약탈은 1910년부터 더욱 본격화되었다. 1910년 토지조사국 설치와 1912년 반포된 토지조사령을 계기로 많은 민유지가 총독부 소유가 되었다. 총독부는 근대적 토지소유 관계를 확립하겠다고 했다. 대한제국 당시 양천사업을 시행했지만 현대화가 진행되지 않았고, 당시 농민들은 토지대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관습적으로 토지소유관계를 규정했다. 또한 토지조사령을 잘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을이나 문중의 共有地(공유지)는 개인의 땅이 아니어서 신고가 소홀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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