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논쟁 그리고 아르뱅주의
- 최초 등록일
- 2016.06.15
- 최종 저작일
- 20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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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 주의의 논쟁의 배경에 대해 정리했다.
칼빈주의를 대변하려고 했던 아르미니우스가 돌연 칼빈주의를 비판자가 되어 칼빈주의를 비판한 내용을 정리했고
이에 대적하기 위해서 칼빈주의 자들이 정리한 튤립교리를 정리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사실 전형적인 칼빈주의도 아니고 아르미니우스 주의도 아니다. 이 둘의 오묘한 혼합체이다. 즉 믿기 쉬운대로 편한대로 믿는 믿음 이것을 아르뱅주의라고 한다.
목차
1) 칼빈주의(칼비니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알미니즘) 간의 논쟁
2)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주장
3) 칼빈주의의 튤립교리
4) 아르뱅주의란?
본문내용
1) 칼빈주의(칼비니즘)와 아르미니우스주의(알미니즘) 간의 논쟁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간의 논쟁이 생기가 된 과정은 대략 이러하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1509년에 태어나 1564년까지 약 55년의 삶을 살면서 종교개혁운동을 이끌었다.
그의 신학은 제자들을 통해 제네바를 비롯해서 네덜란드, 스코틀랜드 등지로 확장되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신학을 만든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도 칼빈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아르미니우스는 칼빈이 죽기 4년 전인 1560년 네덜란드 아우데바터르에서 출생하였다.
아르미니우스는 칼빈 다음 세대 사람으로 생전에 둘이 만난 적이 없다.
1582년 제네바로 유학을 온 아르미니우스는 그곳에서 칼빈의 제자인 테오도르 베자를 만나 그에게 칼빈주의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베자는 칼빈의 제자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는데, 그의 칼빈주의는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극단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어려서부터 칼빈주의 신학을 따르던 아르미니우스는 다소 극단적인 칼빈주의라 일컬어졌던 자기 스승인 베자와도 충돌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칼빈주의자들과 적을 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칼빈주의를 변호하기 위해 나서면서부터이다.
사건의 발단은 가톨릭계열의 한 평신도 신학자 쿠른헤르트가 베자의 예정론을 공격하면서부터다.
베자의 예정론은 칼빈의 것을 이어받았으나 칼빈보다 좀 더 논리적이고 도식적이고 극단적인 면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아담이 타락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예정하셨다는 ‘타락 전 예정설’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쿠른헤르트는 이러한 베자의 예정론을 공격했고 아르미니우스는 쿠른헤르트의 공격에 맞서 칼빈주의를 변호하라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그가 예정론을 변호하기 위해서 성서를 살피던 중 그는 도리어 쿠른헤르트의 편으로 의견이 기울어진다.
그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이 성서의 가르침에 부합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느닷없이 칼빈주의의 논적으로 부상하게 된다.
칼빈주의자들은 이제 내부의 적 아르미니우스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르미니우스와 칼빈주의자들간의 논쟁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한동안 계속되었다.
참고 자료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 신광은 | 포이에마 | 2014.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