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 레포트] 기독교 세계의 분열.
- 최초 등록일
- 2014.03.30
- 최종 저작일
-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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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세교회사]란 책 중 3장을 읽고 요약한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 분열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목차
1. 분열의 씨앗
2. 두 개의 교회
3. 재통일을 위한 모색
본문내용
많은 사람들이 중세는 통일된 교회로 시작해서 분열과 불신에 빠진 일군의 교회들로 마쳤다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그것은 서구의 견해일 뿐이라고 단정지으며 좀 더 시각을 넓혀서 보면 중세는 분열로 시작했다고 주장하며 제 3장을 시작한다.
700년경, 다섯 개의 유서 깊은 총대주교구 중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이 이슬람권에 장악되었다. 교회들이 이렇게 무너지면서, 콘스탄티노플과 로마가 공동의 적 앞에서 공동의 문화와 종교를 보호하기 위해 결속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기대함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세 가지 방해요소가 있었는데, 첫째가 그리스인들이 과부들을 수녀로 받아들인 데 반해 로마인들은 그렇지 않는다거나, 그리스인들이 성찬을 세 주일 연속해서 받지 않은 자들을 파문한 데 반해 로마인들은 그렇지 않은 점 등 ‘관습의 차이’이고 두 번째의 방해요소가 ‘정치적 분리’이다. 교황은 이미 세금 부과 문제 등으로 황제와 사이가 틀어져 있었는데 화상파괴 운동(iconoclast movement)이 전환점 구실을 하면서 교황 스테파누스 2세는 교황의 주권을 뒷받침 해줄 서방의 새로운 정치적 기반을 찾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은 그리스 교회와 라틴 교회 사이의 분열을 완전한 기정사실로 만들었다. 세 번째 방해 요소가 ‘교리적 차이’인데, 동방과 서방의 간격을 넓히는 방향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니케아 신조’에 관한 문제였다.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간명한 신앙 진술을 공포했는데, 이 신조에는 성령께서 ‘성부에게서’ 나오신다는 문구가 실려 있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