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개혁정치
- 최초 등록일
- 2016.10.09
- 최종 저작일
- 20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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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제도의 개혁과 인재등용
(2) 서원철폐와 경복궁 중건
(3) 재정∙군제개혁과 국방대책
(4) 편찬사업 및 풍속개량
본문내용
(1) 제도의 개혁과 인재등용
정권을 잡은 대원군은 지금까지 변칙적으로 정치를 이끌어 온 세도정치를 청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로 국가기구 정비에 먼저 손 을 대고 있다.
임진왜란부터 국가의 군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비변 사(備邊司)가 그 후 계속 존속되면서 중앙정부의 사실상 최고기관으로 군림하여 의정부(議政府)와 삼군부(三軍府)가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 던 바, 1865년(고종 2년) 대원군은 비변사의 기능을 출소시키고 그 지위 도 격하시켜 의정부와 삼군부의 본래 기능을 부활시켜 의정부는 정치를, 삼군부는 군사의 최고기관으로 삼았다.
그는 왕권강화와 함께 세도정치의 모순을 극복하여 전제군주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인재 등용에 대단한 열성을 보였다.
대원군의 인재등용의 원칙은 한마디로 문벌, 당색, 지방인 차별을 철폐하고, 수완과 기능 위주로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심는다는 것이다. 우선 신정부의 조각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영 의 정 : 조두순(趙斗淳, 1796∼1870)
좌 의 정 : 김병학(金炳學, 1821∼1879)
이조판서 : 이의익(李宜翼, 1794∼?)
호조판서 : 김세균(金世均, 1812∼1879)
병조판서 : 정기세(鄭基世, 1814∼1884)
선혜청당상 : 이승보(李承輔, 1814∼1881)
훈련대장 : 이경하(李景夏, 1811∼1891)
금위대장 : 이장렴(李章濂, 1821∼?)
어영대장 : 이경우(李景宇, 1801∼1887)
포도대장 : 신명순(申命淳, 1798∼1870)
총 융 사 : 이방현(李邦鉉)
이를 살펴볼 때 대원군은 풍양조씨의 대표적인 조두순과 안동김씨 중 비교적 그와 가까운 김병학 이외에는 재기와 담략이 있고 종횡기민한 인물들을 중용하고 있다. 더구나 세도정치 아래 노론 일색이던 관료를 지방과 색목을 가리지 않고 등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차별대우를 받던 서북출신과 고려왕실 유신의 후예를 중용하였으니, 왕정양(王庭陽)을 고종 4년 병조참의에 임명하고, ......<중 략>
참고 자료
李瑄根, 『韓國史』最近世篇. 震檀學會, 1961.
『承政院日記』, 高宗 2年 5月 3日
“壯健王宮 欲用君家墓木 君之先祖有靈 亦必首芩” (李能和, 『朝鮮基督敎급外交史』下篇 , 朝鮮基督敎章文社 1928, 5쪽)